일상노트

[영화리뷰] 김종욱찾기

swmom 2021. 3. 1. 10:22

잔잔히 스며드는 사람이 있다.

첫 눈에 사로잡지는 않아도, 점점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진 사람...

보통 이런 사람들은 오래 알고 함께해야 그 매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첫사랑의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한번 사랑하면 깊게 사랑하게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사랑'이라는 그 단어만으로

첫사랑의 대상은 늘 신성시(?) 되는 것 같다.

남자에게 첫사랑은 평생 잊지 못한다는 말이 괜히 나올까.

 

영화 "김종욱 찾기"는 여주인공의 첫사랑 "김종욱"을 찾는 영화이다.

아마 남자주인공이 첫사랑을 찾으려고 했다면

머 뻔할 수 있는 그런 스토리라고 생각했을텐데

여주인공의 첫사랑을 찾는다는 모티브가 나름 신선했다고 생각한다.

 

 

인도에서 만난 첫사랑 김종욱 때문에 다른 사랑을 안한다고 생각한 아버지에게 이끌려

첫사랑 찾아주는 사무실을 찾은 서지우,

여행사에서 짤린 후 첫사랑 사무실을 연 한기준,

 

굳이 꼭 찾고 싶은 열망이 보이지 않는 그녀와

밥줄을 위해서 반드시 김종욱을 찾으려고 하는 그

 

 

영화 중반부까지 서로를 징그럽게 질려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그들이

언제 서로에게 빠져들었을까

난 그게 너무 궁금했다.

티격태격 싸우다가 정이 든 것 같은데,

어느새 눈빛이 바껴있는 두 사람을 보니 배우 임수정과 공유가 아니라

서지우와 한기준만 보여서 점점 더 몰입하게 된 영화이다.

 

 

나도 대학교 2학년 때 인도에 갔었다.

벌써 17년 전이네..

1년간 인도에 대한 강의를 듣고, JAL 항공을 타고 일본 도쿄에서 환승해

인도 중북부를 한달 정도 여행했다.

큰 도시 이름 외에 어디를 다녀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신기하게도 델리에서 자이살메르까지 갔던 기차안의 풍경, 사람들의 눈빛,

바라나시의 공기, 갠지스 강을 마주했을 때의 떨림

혼자 툭툭이를 타고 이른 새벽 동네한바퀴를 할 때의 거리 풍경 등...

하나의 장면 장면들이 오롯이 기억이 난다.

 

 

"그날의 공기, 거리의 냄새나 사람 사이의 느낌이 다 기억난다는 지우"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인도에서의 지우와 종욱의 추억 장면들이

'인도'였기 때문에 나에게는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내가 경험해 본 인도에서의 기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였어도 종욱을 잊지 못하고 끝을 내기를 두려워하는 지우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한기준이 서지우에게 김종욱을 찾았다는 걸 전달하고,

전에 다니던 여행사 점장을 찾아가

"인도가 어떤 나라냐며, 도대체 머길래 10년을 기억하냐며, 

공기며, 냄새며, 사람이 잊혀지지 않는지 묻고는

스스로 (도대체 내가 왜 이러지 모르겠다는 듯,,,) 후 한숨을 쉬는 장면..."이다.

 

김종욱을 찾아주고 할 일을 끝낸 한기준이

왠지 모를 씁쓸하고 외로움 가득한 얼굴로

그렇지만 과하지 않게 감정을 토해내는 이 장면이

현실에서 시련당한 아니면 짝사랑에 아파하는 이를 너무 잘 표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도 덩달아 가슴이 찡해지며 아파왔다.

 

 

이 장면이 공유님의 베스트 씬이라면, 임수정님의 베스트 씬은

단연 마지막 장면이다.

 

"안녕? 안녕 안녕.... "

 

안녕 이라는 단어 하나로 여러 감정을 표현했다.

마치 하나의 재료로 전혀 다른 여러가지 요리를 멋지게 만들어낸 느낌.

 

 

 

얼마 전 첫사랑에 대해 잠깐 생각한 적이 있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가

왜 첫사랑은 잊혀지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왜냐면 내 인생을 스쳐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강렬하게 남아있지 않으니까.

비교적 시간적으로 현재로부터 더 가까운 시점에 만난 사람은

마치 내 인생이란 페이지에 없었던 것처럼 잊혀지기도 하는데

첫사랑이란 이름으로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멀까..

 

내가 내린 결론은 상대방에 대한 추억도 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젊고 예뻤던 나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감정을 처음 겪으며

변화하는 낯선 자신을 마주한 첫 순간, 그 시간들이 기억에 남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이 문장이 참 좋았다.

 

"맨처음 사랑만이 첫사랑은 아니다!"

 

마치 여러분이 갖고 있는 첫사랑에 대한 환상을 깨시오

기억 속에서 추억하는 첫사랑의 환상을 깨고,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진실한 사랑을 받아들이시오 라고 일깨워주는 듯한 느낌이랄까.

 

 

"운명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되는것 아니냐는 딸에게

그러니까 넌 아직 멀었다며

인연을 붙잡아야 운명이 되는거라는 아부지"

 

 

인생의 경험이 적은 20대에는 사소한 만남에서도 인연을 찾고, 운명을 거론하곤 했는데

조금 나이를 먹고보니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연과 운명은 바뀌는 것 같다.

운명론자이지만 주어진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끝까지 가봐야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요"

 

 

10년 전 영화 속 지우와 기준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투닥투닥 사소한 일에 싸우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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