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_자서전1] 엄마의 책장_윤혜린 에세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시는 분
아이가 너무 예쁘다가도 혼자 하는 육아에 지쳐 멍하니 있으신 분
엄마라는 타이틀 말고 여자 아니 인간으로서의 나를 찾고 싶으신 분
하루종일 떼쓰는 아이에게 결국 화를 내고 잠자는 아이를 보며 울어보신 분
육아하는 내가 뒤처지고 도태된다고 생각하시는 분
부모가 된 후 부부 관계가 서먹해지신 분
엄마가 된 아내의 모습을 이해하고 싶으신 분 또는 이해가 안되시는 분
내가 과연 좋은 부모가 맞는걸까 의심되시는 분
내가 우리 아이를 망치는 건 아닐까 걱정되시는 분
이 세상에 나만 힘든거 같아 외로우신 분
그런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북큐레이터 하루인입니다 : )
저희 동네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습니다.
한동안 코로나 때문에 도서관 출입이 금지되었었는데,
이번 주부터 다시 운영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제 아이가 낮잠 자는 동안 정말 오랫만에 도서관을 다녀왔는데요
그리웠던 시간의 갭만큼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아 대여권수에 맞춰 추리느라 혼자 고군분투 했습니다.^^
사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부분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
기억하고 싶은 부분에 밑줄도 긋고 형광펜으로 색칠도 하고
제 생각도 책 모퉁이에 쓰는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 빌리는 것보다는 직접 책을 사서 읽는 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부모님은 저와 동생을 서점에 자주 데려가주셨는데요
저희가 고르는 책은 장르와 수량을 불문하고 다 사주셨습니다.
한번도 '이 책은 다음에 사자 너무 많다 지난번에 산 책 다 안 읽었잖니' 라고 반대하신 적이 없습니다.
제가 직접 돈을 벌고 보니 그게 참 쉬운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새 책 냄새가 좋았고 책들이 가득한 서점이 좋았습니다.
그 습관 때문인지 지금도 한달에 몇권의 책을 주문하는데요
주문한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새 책을 주문할 때도 있고
심지어 펼치기도 전에 다른 책을 살 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지만 그래도 저는 도서관이 참 좋습니다.
무료로 내 시간을 가장 알차게 잘 보낼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도서관에서 아직 읽지 않은 무수히 많은 책들을 보며
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소중히 보내야겠다고 반성과 다짐을 하게 됩니다.
꼭 어떤 책을 찾아서 읽어야겠다가 아니라
보물찾기 하는 것처럼 무수히 많은 책들 속에서 우연히 읽고 싶은 책을 골라 마음껏 읽을 수 있고
시간이 부족하면 공짜로 집까지 들고와 끝까지 읽을 수 있는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할까요
어제 그런 책을 또 만났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엄마의 책장"(윤혜린 지음/도서출판 사과나무 제작)이라는 책입니다.
어떤 책을 읽으면서 이건 내가 생각했던 건데, 작가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갔나 할 때 있으시죠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까지 텔레파시로 읽는 쌍둥이가 나에게도 있었나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작가가 저와 동갑인거 같더라구요 ㅎㅎ)
그래서 많이 울고 많이 위로받으며 한장 한장 책장을 넘겼습니다.
어떤 책인지 소개도 없이 너무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생각만 늘어놓았네요^^;
이 책은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며 자신을 알아가는 내용을 담은 작가의 에세이입니다.
육아로 지치고 힘들때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위로 받은 작가의 고백이 마치 제 이야기 같았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래 맞아 그래 그렇지 그래 힘들어 그래 대단해 그래 그래서 그런거였어 라고
공감하고 격려받으며 따뜻한 위로를 받은 책입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아이, 엄마, 아빠, 동생 우리 가족과 나에 대해 참 많이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남편이 말했다. 처가에 가면 "아니"라는 말을 듣는다고, 다들 습관처럼 쓰는데 자신은 생소하다고." ( - 32page 중)
서울로 대학을 온 이후로 1년에 부모님을 보는 횟수가 열번이 채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고 부모님과 떨어져 살다보니 가끔 보는 부모님 특히 엄마는
저를 아직 10대 아이 대하듯 다 챙겨주려고 하셨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고차원(?)적인 대화는 해본적이 없고
밥먹었나 머먹었나 머에 머를 챙겨먹어라 잘 먹어야된다 이런 이야기만 하세요
머리가 좀 컸다고 알아서 잘 챙겨먹는다고 못된 말이 나올때도 있었습니다.
그냥 친구들이랑 머 먹었는데 맛있더라 그렇게 말했으면 될 것을.
불만을 있는 그대로 말 못하고 괜시리 퉁명스럽게 쏘아내는 못된 제가 참 싫으면서도 말하고서 후회를 합니다.
엄마의 말버릇 중 하나는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면
"아니"로 시작하는 겁니다.
상대방 이야기가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라 일본어에서 "엣또" 아니면 "아노" 처럼
정말 습관처럼 사용하신다는 걸 이해하는데 한참이 걸렸습니다.
아니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뜻처럼 제 이야기에 반기(?)를 드는 것 같아
엄마랑 대화하다보면 괜스레 기분이 나빠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과 대화 하다보니 제가 정말 습관처럼 "아니 있잖아"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정말 한대 얻어 맞은것 같았습니다
나와 대화하는 상대방이 내가 엄마의 습관을 알아차린 것처럼
'이건 저아이의 말버릇이야' 이렇게 이해해줄까는 커녕
내가 엄마의 습관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 역시 마찬가지겠지라는 생각에
이 습관을 바꾸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3살 아이와 아이 대화를 주로 나누고
지인들과 거의 만난 일이 없다보니 어떤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 책에서 저 구절을 보니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가 되고 제일 많이 생각난 사람이 엄마입니다.
아이가 아파서 밤새 자는 둥 마는 둥 아이 열을 체크하며 간호하다보면
어렸을 적 수없이 기억나는 이마 수건을 바꿔주는 엄마의 손길,
갑자기 코피를 쏟는 아이를 앞에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을 때
계단에서 굴러 정강이가 다 까져 뼈까지 보이던 나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던 엄마의 모습,
나보다 열살이나 어렸을 때 엄마가 된 꽃다운 나이의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을텐데
내 눈에는 엄마로만 보이고 엄마로만 대했으니 얼마나 섭섭했을까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 섭섭한 것만 늘 먼저 생각하니 저는 한참 멀었나봅니다.
"게리 채프먼은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저마다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는 사랑의 언어가 있다고 말한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다섯 가지 중 하나이다. 처음에는 '함께하는 시간'이 나의 사랑의 언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함께하는 시간'이 줄거나 없다고 해서 속상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남편이 나에게 상처를 준 순간에 대해 생각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가 나의 생각과 행동을 부정할 때, 내 잘못을 지적할 때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순간 자존심 때문에 화조차 못 냈지만, 그 작은 균열로 오랫동안 아팠다. 나의 사랑의 언어는 '인정하는 말'이었다." (-92page 중)
아이를 낳고 독박 육아를 하며 이렇게 예쁘고 소중한 아이와 함께 있는데
불쑥불쑥 올라오는 힘듦은 어떻게 말로 표현이 안되었습니다.
예쁘게 차려입고 유모차를 우아하게 끄는 것은 고사하고
떡진 머리로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머라도 사러 나가야 바깥 바람을 쐬었습니다.
하루종일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아이와 말하다 보면
특정 단어들이 이 말이 맞았나 아주 낯설게 다가올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1년의 육아 휴직 기간 동안 다시 없을 1살의 아이와의 시간을 함께 보내었죠
그러다 한번씩 이렇게 휴직 후 복직하면 진급도 밀릴테고
하루종일 집에 있다보니 살은 쪄서 축 쳐져있고
치워도 티 나지 않는 엉망이 된 집과
어른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회사에서 돌아와서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애가 어땠는지 하나도 묻지 않는 생활이 이어지며
폭발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희생하는데.. 라는 제 말에
자기 자식을 낳아 키우는데 희생이라는 표현은 말이 안된다며 발끈하며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그 사람과 살며 몸도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그냥 제가 바란건 그래 고생이 많다 힘들지 잘 하고 있어 우리 같이 노력해보자
그것도 힘들다면 그냥 아무말 없이 꼭 안아주는 거였는데 말이죠..
저는 감정적이다 보니 화가 나면 입을 닫아버립니다.
말해봤자 또 저만 이상한 사람 만들게 뻔하면 그냥 말 안하고 말지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냥 말 할걸 그랬어요.
어떻게 희생이 아니냐고 심한 입덧으로 몇 달을 못먹고 두통에 시달리고
아이가 건강히 잘 태어날지 불안해하며 잠도 제대로 못자고
목숨 걸고 출산하고 면역력에 좋다는 말에 밤낮없이 모유수유하고
그렇게 체형은 변하고 머리는 빠지고 피부는 처지고 트고
당신처럼 힘들게 입사한 회사에서 출산/육아휴직했다고 1년이 아니라 장담할 수 없는 기간을 밀려야 하고
당신은 하루에도 수십번 흡연하러 집밖을 나가지만
나는 어쩌다 한번 외출하는 것도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 마음 편히 다녀온 적이 없다고...말입니다..
음.. 작가님이 나도 힘들어요 우리다 잘하고 있어요 이렇게 말해주니
그동안 속에 있던 응어리들이 막 터져나와버렸네요^^;
책을 읽으면서 농부 남편과 작가님이 참 부러웠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내 편인 한 사람이 있는거니까요.
아이가 다른 사람들을 가리켜 "얘는 누구야"라고 한다거나
크게 혼낼 일도 아니었는데 혼내고 나면 "엄마 미안해 다신 안그럴게요"하고 한다거나
제 아이가 했던 말들을 책에서 만났습니다.
사실 책을 읽으며 아이 생각이 제일 많이 났습니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침착하게 잘해줄걸
왜 나는 3살 아이의 감정에 맞춰 오르락내리락 했을까 후회하는 것이지요..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 반가운 이야기들도 많았습니다.
대학 졸업할 때즈음 유행했던 <시크릿><아프니까 청춘이다>
보고 또 보고, 순풍 산부인과, 김혜수 플러스 유, 김희선, 미스터 Q, 토마토, 남희석이휘재의 멋진 만남,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god의 육아일기, 애정만세(김꽃님), 남자셋여자셋, 논스톱 등등
오랜만에 중고등학교 친구를 만나 "그때 그거 있자나~" 하면서 수다를 떤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엄마로서의 내가 아닌 인간로서의 나를 마주한 시간이 정말 많았습니다.
생각하고 반성하고 읽고 쓰며 아이와 함께 나도 자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도 불현듯 잘하고 있는 건지 불안하고 걱정될 때
누군가 내 마음을 꺼내 놓은 것 같은 책 한권이었습니다.
소중한 책 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