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_소설15] 공사장의 피아니스트_나윤아 지음
"공사장의 피아니스트" (나윤아 지음/뜨인돌출판 제작)
성인이 되고 한동안 공허했던 적이 있다.
학창 시절에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 대학생 때는 취업을 위해서 라는 목표로 달려왔는데
그 다음은? 이라는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하면서 방황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루고 싶은 목표와 꿈이 보이지 않아 힘들었었다.
아직도 거기에 명확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방황하며 우울해하기만 했던 20-30대와
지금은 확실히 다르다.
답이 보이지 않아 힘들 때면 책을 펼치고, 운동을 하고, 피아노를 치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그 시간에 몰두하려고 한다.
내게 주어진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시간의 소중함을 몰랐던 청춘의 시간을 보내고서
이제야 조금씩 내 인생을 내 스스로 만들어간다고 할까.
아직 어린 아들을 보며 내 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기를 바란다.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기를, 그 일을 하며 느끼는 행복감으로 풍성한 삶을 살기를,
학창 시절의 나는 무엇을 좋아했었나
열심히 공부하고 나름 꿈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고
책상 앞에 앉아서만 하는 공부는 싫어 다양한 활동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도 이게 내 길이야 할 만한걸 찾지는 못했다.
생각해보면 아직까지도 못 찾고 있는데, 그 때 그런 걸 발견하고 찾는 건 쉽지 않은 것 같다.
유명한 연예인이나 예술가, 운동 선수들처럼 타고난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봐오며
당연하게 생각되는 그 길이 실은 아주 특별한 것일뿐.
그럼에도 그 나이에는 무엇이든 꿈 꿀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세상을 너무 많이 알기에 현실적인 것을 먼저 따지며 꿈을 꿈과 동시에 접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 때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주인공 급으로 마음만 먹으면 안 될 건 없을 것 같은
용감함과 용기와 열정이 있었다.
몰두할 '한 길'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아마 방황하고 불안해하고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랬었다.
한동안 학창 시절이 많이 그리웠는데,
사실 요즘은 그런 생각은 안 든다.
그런데 책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읽으며
학창 시절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은 주인공들이 많이 부러웠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20년이 지난 뒤의
혜영, 박하, 수지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상상해보게 된다.
혜영은 보란듯이 멋진 글을 쓰고 있을 것 같다.
박하는 본인이 만든 콘서트홀에서 멋진 연주를 하는 꿈을 이루었을 것 같다.
수지는 음,,, 배우를 하다 먼가 더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성공한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
학생들에게 너희가 계속 뜨거웠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던 유한민 선생님을 보며,
나의 고등학교 은사님 송호찬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났다.
칠판에,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희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웠던 적이 있느냐라고 쓰시던
그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뻔한 소리 하던 종례 시간이 아니라,
이렇게 20년이 지나서도 잊혀지지 않는 메시지를 많이도 주셨다.
dust in the wind라는 팝송 가사를 나눠주시기도 했는데,
아직도 그 노래를 흥얼거리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방황하던 내게 선생님은 든든한 등대처럼, 우직하게 서서 옆길로 새지 않도록 지켜주신 분이었다.
어려운 현실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줄 아는 박하를 보며
존경스럽고 안쓰러워 마음을 다해 응원하게 되었다.
피아노와 글쓰기,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를 자신의 꿈으로 삼고 노력하는 혜영이와 박하에게
끌릴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한 거겠지.
참 예쁜 책이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려면 그만큼 각오를 해야지. 최수지도 다 각오하고 하는 거겠지.
아니면 걔 진짜 정신머리 없는 거고." (-P66쪽 중, 배우를 하겠다는 수지를 보며 친구들 왈)
"음, 일단 도서 박람회에 갈 거야. 책도 많이 읽을 거고. 여행 다니면서 소설도 쓸거야.
그렇게 틈틈이 글 쓰고 이것저것 보다 보면 뭔가 잡히지 않을까 싶어. 그리고 나, 대학 안 갈거야.
남들 4년 공부할 동안, 난 글 쓸 거야.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글 써서 그걸로 먹고 살 만큼만 되면
좋겠어. 나만 좋아서 쓰는 글은 죽은 글인 것 같아. 어쨌든 난 평생 글 쓰면서 살 거야.
조금이라도 젊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몸 던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책임은 내가 지면 되지 뭐." (-P121쪽 중)
"있잖아, 사람은 하늘에 자기 별을 하나씩 가지고 있대. 그 별들이 자기를 좀 봐달라고 온 힘을 다해서
빛을 내는데, 그걸 찾는 사람도 있고 못 찾는 사람도 있다는 거지. 난 아직도 못 찾았어. 딱 내 거다 싶은
별을 본 적이 없단 말이야. 사실 제대로 하늘을 본 적도, 그 놈을 찾겠다고 노력한 적도 없는 것 같아.
어쩌면 이미 떨어지고 없을지도 모르지. 걔도 지쳤을 거 아냐. 근데 넌 한번 찾아봐라. 니 별은 아직
있을 것 같다." (-P152~3쪽 중, 박하 누나가 방황하는 박하에게 한 유일한 충고)
"혜영이는 처음 박하를 만났을 때의 그 기운 넘쳤던 얼굴을 기억해 냈다. 그때도 박하는 여전히 고단한
공사장 아르바이트생이었지만, 선명하고 밝은 에너지가 있었다. 혜영이는 그것의 정체가 뭘까 궁금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자기가 좋아하는 걸 알고 있는 데서 오는 자신감이었던 것 같다."
(-P187쪽 중)
"혜영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의 열아홉에 박하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넌 참 아름답고, 넌 참 강하다.
무너질 듯 위태롭다가도 끝내는 웃으며 일어나는 네가 너무나 멋있다. 우리는 아플 수 있고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걸 두려워해서는 나아갈 수 없는 것을 난 넌 통해서 보았다. 이제야 깨달았지만,
난 정말로 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다. 넌 글을 쓰고 싶다고 소리치는 내 마음속의 또 다른 나였고
그래서 난 너에게 끌린 모양이다. 너의 피아노가 그토록 달콤하게 들렸던 것에는 틀림없이 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난 너에게 고마운 것이 참 많다." (-P190쪽 중)
"얘들아, 도전하지 않으면 성공도 없어. 싸우지 않으면 이길 수 없지. 너희가 평범하게 사는 게 만족스러울
것 같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렇지만 다른 것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뛰어들어봐.
그리고 부딪쳐. 모두들 똑같은 모양으로 피곤하게 사는데, 가끔 너희 같은 사람이 있는 것도 참 멋있지
않겠냐? 나는 너희가 계속 이렇게 뜨거웠으면 좋겠다."
(-P203쪽 중, 음악제 대기실에서 유한민 선생님이 고3친구들에게)
# 나윤아 작가님께
안녕하세요 작가님 책 읽기와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는 독자입니다.
언젠가 제 스토리를 쓰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지요.
10대, 청소년은 아니지만 작가님 책을 읽으며 저도 제가 좋아하는 것과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리운 학창시절도 잠시 소환해보구요.
작가님 글 중에 참 와닿는 표현이 많았어요. 내 나이 열아홉에 박하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표현.
저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지금의 이 때, 그 때의 그 시간에 항상 같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제 곁에 있어준 사람들 덕분에 더 성숙하고 아픔을 이겨내고 했었는데
그때마다 저런 생각을 했답니다.
그리고 유한민 선생님처럼 제 고등학교 시절에도 저희의 열정을 응원해주시면 은사님이 계셨어요.
계속 뜨거웠으면 좋겠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셨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0년이 다된 지금까지
가끔 떠오르게 해주는 메시지들이었습니다.
책 한 권을 읽으며 제 과거와 주인공들의 미래를 오가는 시간 여행을 했네요.
재미있는 책 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