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책리뷰_소설17] 광덕산 딱새 죽이기_김주영 지음

swmom 2021. 7. 4. 17:49

 

사람을 죽이는 스릴러 장르가 아니어도 긴장감 넘치고 재미있는 책을 만났다.

할머니댁이 있는 시골 어느 마을이 배경인 듯 친숙하면서도

다양한 주인공들의 성격과 삶을 엿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바로 "광덕산 딱새 죽이기" (김주영 지음/문학동네 제작)이다.

 

  

 

광덕산 자락에 위치한 대밭골이란 이름을 가진 마을이 배경이다.

어느날 난데없는 강풍이 불어 광덕산 둘레길 초입에 있는 배나부에 초상화 하나가 걸려있었다.

그 초상화가 태조대왕이기에 잘 모셔야 한다는 풍수의 말을 믿고

그림을 발견한 관씨 문중 사람들이 바깥 출입을 할 때마다 의관을 정제했기 때문에

옷갓마을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소설이 참 재미있었던 것은,

객관적으로 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순진하고 너무나 투명한 주인공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주 예의 있는 것 같지만 한순간 돌변하기도 하고,

중국인 경관우를 불법체류자로 몰려다가 높아진 중국의 위상을 듣고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소문을 내는 이장이나,

돈 앞에서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며 관계가 무너지는 마을 사람들 모습이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태조의 초상화를 발견했다는 이유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관점석 씨를 농사꾼이 아닌 생원님으로 부르고,

옆에서 벼락이 떨어져도 경박스럽게 놀라지 않으며, 밥은 반그릇만 먹고 국은 소리나게 훌쩍거리지

않아야하고 말은 천천히 해야하고 등등,

 

그리고 그런 생원님의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온 관대규.

평생 일은 안하고 아무것도 안해야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태평한 태도로 살아오다

한번 떠난 설악산 여행에서 사촌 복길의 계략에 땅을 잃게 되는 멍청한 작자.

착하다지만 그렇게 사는게 전혀 착하게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죽기 얼마 전, 자기 같은 남자를 만나 아이를 벤 딸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59세 관대규가 돌연사하며 시작되는 이 소설은

복길이 영안실 유령 선배와의 대결을 펼친다거나,

태석이 술에 취해 대숲에서 밤새 손녀 지순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착각한다거나,

대규가 자다가 방문객(저승사자)과 대화를 한다거나 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런 부분들이 더 긴장감 있게 소설을 읽게 해주었다.

 

홍수로 무너진 섶다리를 다시 지은 외나무 다리 공사 당시의 비밀이 클라이맥스가 되어

모든 것이 돌변한다.

마을은 갑자기 유명해졌고 관광객이 늘어나며 마을의 수입은 늘었지만,

갈등도 심해진다.

영원한 비밀은 없듯 공사의 비밀에 대해서도 말이 돈다.

 

너무나 현실적이다.

그래서 이건 소설이야하고 일깨워주려는 듯,

중간중간 유령 같은 이야기들을 넣은 것일까.

 

사는 방식에 정답은 없지만,

평생 농사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온 점석씨나 고기잡이 일을 하며 꿈을 갖고 있는

욕쟁이 할배 태석씨, 서울에서 갖은 고초를 겪고 아버지 죽음으로 돌아온 고향에서

사촌 형을 등쳐먹으며 영악하게 살게된 복길이나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안하는 삶을

살다 그가 살아온 인생처럼 조용히 세상을 떠난 대규씨의 삶을 엿보며

어떻게 살아야될 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가만히 계셔보세요. 형님 인생 여기서 종친 것은 아니잖아요. 형님 그거 아세요? 갯버들이 있는 곳에

물이 가까이 있다는거?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해결 방법도 거기에 같이 있다는 얘깁니다. 그게 우리가

경험한 유구한 역사에요. 하지만 이것 한가지는 명심하세요. 이미 저지른 일은 코끼리가 잡아 당겨도

되돌릴 수 없어요. 그거 아셔야 합니다." (-P11쪽 중, 관복길)

 

"내가 생각해봐도 백살은 일 같잖게 넘길 것 같아. 해야할 일이 태산이거든. 사람은 할 일이 많아야

오래 사는 법이야." (-P119쪽 중, 관태석)

 

"억지스러워 보이고 선뜻 이해도 되지 않겠지만, 살다보면 그런 일도 있는 것이다." (-P145쪽 중)

 

"형수님, 이제 보니 억측이 심하시네요. 그 모두가 남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입방정입니다.

잊어버리세요. 세상사 모두가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잊어버리기로 하면 또 아무것도 아닌

거에요. 형수님 그거 아세요? 마음 편안하게 가지려면 마음에 거치적거리는 세상사를 잊어버리는

일 뿐입니다." (-P156쪽 중, 관복길)

 

"진실도 불편할 때가 있다더니 바로 그런 경우였다." (-P166쪽 중)

 

"돈이 하는 일이 뭔 줄 알아? 사람 간의 정의를 망치고 구기는 일밖에 못해. 여자관계처럼 한번 자고

나면 끝이야. ...(중략) 자네는 말이 많네그려. 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출발한다네. 믿음을 쌓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 아닌가. 그게 모두 몇 마디 언사에서 출발한다네"

(-P200쪽 중, 관태석)

 

"그래서 자넨 가짜 양반이야. 한 가지 고통이나 시련이 열 가지 고마움을 알게 한다는 것을 모르는가.

고통이 있어야 고마움도 깨닫게 돼. 고마움이 고통을 이겨내는 힘을 주는 거야. 매일 높은 곳에 올라가

뒷짐 지고 서서 멀리 풍광을 바라보는 것이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 해서 선비의 풍모라고 생각하는가?

거기에 무슨 고통이 있나? 젊은 시절부터 시련을 겪지 않고 살아온 것을 자랑으로 알고, 오직 착하게

살고 신실한 마음을 가지면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가. 세상은 자네의 그런 얕은 생각과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을 걸세. 세상은 스스로 노력 없이 자신의 운세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다는 것을 잊지 말게."(-P208쪽 중, 밤의 방문객)

 

 

# 김주영 작가님께

안녕하세요 작가님

재미있으면서 깊이 있는 글이란 이런 것이구나 책을 읽으며 내내 생각했습니다.

완벽한 모습을 한 주인공은 없지만 그들이 밉지 않게 느껴지며

오히려 연민의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은, 어쩜 현실에서 우리 삶이 실제 그렇기 때문이겠지요..

마지막 방문자의 입을 통해 말해주신,

세상은 스스로 노력 없이 자신의 운세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다는 걸

잊지 않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계속해서 고민하며 진지하게 삶을 대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좋은 책 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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