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_소설18] 애주가의 결심_은모든 지음
"애주가의 결심" (은모든 지음/은행나무 제작)
이 책을 읽으며 난 애주가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종 상관없이 즐기고, 술 마신 다음날 또 다시 아무렇지 않게 술을 마시는 술주희를 보며
술 좋아한다는 소리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고시텔에 살다 망원동의 사촌언니집으로 이사하며
한 일년 부어라마셔라 하며 살아보겠다고 다짐한 주희.
큰 빚을 지지 않은데 감사하며 이 악물고 다시 뛰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근했지만
실은 뛰기는 커녕 이를 악물고 버틸 기력도 남아있지 않아
일과 시간에 쫓기지 않고 웅크리고 있을 만한 시간이 절실했다는 그 고백이 어찌나 아프던지.
그녀 같은 술친구가 동네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술친구. 그런건 없다가도 생기지만 있다가도 없어지고, 뭐 그렇다고" (-P38쪽 중)
시원한 맥주, 아님 쏘맥 정도 즐겨 마시는 내게
다양한 종류의 술을 소개해주며
젊은 세대의 일과 관계 속의 무게에 대해
가볍게 때로는 쓰디쓰게 풀어내주는 소설이었다.
"활력이 넘치는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들이 함께 웃는 시간의 유효기간에 대해 몽상했다.
몇 해 뒤에는 혹은 고작 일이년이 지난 뒤에는 지금 한자리에 모여서 웃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가
소원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이 그들의 인생에서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르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한 때를 스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P81쪽 중)
술이 아니라 사람이 좋아서,
신촌에 살던 그 때의 나도 선배들이 친구들이 부르면 그렇게 달려나갔었다.
같이 있으면서도 외롭고 다음날 무기력하게 누워있어야 하는 그 시간들이 참 싫었으면서도
어느새 술이란 친구가 참 좋아졌었다.
술자리가 좋았던 게 아니라 술을 좋아한거였구나 느끼며
술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는 헛소리를 믿기도 한 때가 있었다.
그 땐 몰랐다. 함께 웃는 시간의 유효기간을..
자는 시간 빼고는 늘 함께하던 동아리 사람들과 졸업 후에는
일년에 한번은 고사하고 몇 년간 연락 한번 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해진다는 걸,
이십대의 나는 알지 못했다.
인생에서 가장 에너지넘치고 빛나야 할 청춘이
참 살기 힘든 세상이다.
마치 젊음이라는 인생 최대의 선물을 가졌으니 다른 건 다 내 놓아라 하고
신이 심통을 부리는 듯,
불안하고 또 불안하다.
그래서 나도 20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겠냐는 질문에는 망설여진다.
토닥토닥.
힘들고 지칠 때,
누군가 곁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이 좀 더 따뜻한, 안정적인 30대를 보내고 있길....
#은모든 작가님께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관계에 서툴지만 사람들과 관계하며 상처받아 아파하고
열정은 넘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방황하던 20대의 저를 만났습니다.
신촌 구석구석 골목골목, 가게 이름은 물론 특징까지 꿰뚫고 있었는데
이제는 낯설기만 하지요..
함께 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그 장소에서의 시간, 추억도 유효기간이 있기에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저는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작가님 책을 읽으며 술주희에게 패배를 선언하듯 이제 난 술을 그만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쾌하면서도 청춘이란 타이틀의 무게를 이고 사는 젊은이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좋은 책 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