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_소설19] 깡깡이_한정기 지음
아빠가 눈 수술을 하고 집에 와 있는 동안
집 바로 앞에 영풍문고가 있다는 걸 아시고는
사오신 여러권의 책 중 한권이다.
대부분 시집이나 고전이었는데,
들어보지 못한 책은 이 책 한 권이었다.
깡깡이가 머지? 하는 호기심으로 책을 펼쳤다.
"잔인하고 슬픈 시간이었지만 시간은 또 상처를 치유해주었고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공평하고 고마운 시간이기도 했다." (-P166쪽 중)
어렸을 적 재미있게 봤던 "육남매"라는 드라마가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해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큰 문제이던 60-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내 들었던 생각은 요즘 젊은 세대와 저들이 겪은 아픔 중 누가 더 절망적일까이다.
노력해도 따라 잡을 수 없는 빈부의 격차, 그래서 시도조차 안해보고 포기해버린다는 요즘의 젊은 세대들이
소설을 쓴다면 얼마나 우울하고 절망적일지...
잔인하고 슬픈 시간을 겪어낼 의지조차 없는 젊은 세대들이
돌아보고 그 시간이 상처를 치유해주고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고 고마워하기는 커녕
원망만 남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애초에 누가 더 힘들까 비교하는 건 아무 의미 없는 건 잘 안다.
작가님이 우리가 제일 힘들었어요 하는 의도로 소설을 쓰지 않으셨다는 건 더 잘 알면서도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다들 참 힘든 시간을 겪었구나,
쉬운 인생은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맑은 물이 샘솟고 시원한 나무 그늘이 있는 곳. 사막을 건너는 낙타와 사람들이 마른 목을 축이고
지친 몸을 편히 쉴 수 있는 곳. 우리 아버지도 느그 엄마도 그런 곳에서 쉬다가 돌아오면 진짜 좋겠다!
그자?" (-P81쪽 중)
맑은 물이 샘솟고 시원한 나무 그늘이 있는,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를
인생의 한가운데서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행복할까.
너무나 사실적인 이야기에
내 귀에도 깡깡이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바다 내음이 느껴지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 자란 아빠는 어떤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읽었을지 궁금했다.
"나는 다 쓴 공책 뒤쪽 남은 페이지에 쓱쓱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문철이한테서 빌린 책에서
봤던 그림 같은 집을 떠올리며 그린 이층집이었다. 레이스 커튼이 쳐진 창가에는 꽃이 핀 화분도
놓여 있고 집 옆에는 커다란 나무와 자잘한 풀꽃도 그렸다. 내 손끝에서 형체를 드러내는 집을 보며
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P74쪽 중)
"꼭 말로 드러내지 않아도 어떨 때는 침묵이 더 많은 말을 할 때가 있다는 걸 그날 나는 알았다"
(-P115쪽 중)
여운이 오래 가는 소설이다.
# 한정기 작가님께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엄마아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제게는 엄마 아빠로만 존재했던 부모님께도
누군가의 자식이던 아이의 시간이 있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며
마치 우리 부모님의 자서전을 읽는 것 같은 기분으로 책장을 넘겼습니다.
작가의 글을 보니 작가님과 소설의 배경이 된 곳을 함께 돌아보는 이벤트도 있는 것 같은데
언젠가 함께 해보고 싶습니다.
좋은 소설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