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노트

[에세이] 크리스마스 아니고 그냥 12월 25일을 보내고 있는 나

swmom 2021. 12. 25. 10:56

크리스마스다.

아이가 자는 동안 준비한 선물을 트리 밑에 두고,

눈뜨자마자 산타할아버지가 다녀가셨을까? 라는 다른 때와 다른 아침 인사를 했다.

신나서 거실로 나간 아이는 선물을 보고 신이 났다.

나는 조마조마했다. 요즘 완전 빠져있는 헬로카봇이 아닌, 미니특공대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선물을 살 때만 해도 미니특공대와 헬로카봇을 50대 50, 음, 양보해도 40 대 60 비율로 좋아했는데,

그 2주 사이 아주 많이 헬로 카봇으로 기울었다. 거의 0대 100 ㅠㅠ

아니나 다를까 포장을 뜯고 미니특공대네? 하고는 옆에 두고

어제 어린이집에서 받은 헬로카봇 레드와일러와 외숙모가 선물로 준 헬로카봇 시계만 갖고 논다...

 

이 아이에게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기억될까? 문득 궁금했다.

우리 아이가 기억하는 크리스마스는 내가 만들어줘야하는건데,,,

행복하고 특별한 기다려지는 그런 날이어야 하는 걸까?

 

나도 어렸을 때는 크리스마스날,

마치 1년동안의 나의 행동이 착하게 살았는지 스스로 되돌아보며

산타할아버지께서 주시는 선물을 기다리는 설레임에 가득했었다.

성인이 되고 처음 맞은 크리스마스는 남자친구와 코엑스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가 선물로 줬던 빨간 고릴라가 달린 키플링 가방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너무 빨갰다...)

그 이후 크리스마스는 이렇다할 기억이 없다가 

서른 언저리쯤 솔로 4명이서 명동의 수제비 전문점에서 닭도리탕을 먹으며

찐한 크리스마스를 보내었다.

내가 어느새 거리에서 캐롤을 듣기 힘들어 크리스마스 기분이 전혀 안 느껴진다고 하자

후배가 음악 저작권 때문에 마음대로 못 트는 거라고 했다.

명동에서 서래마을로 오는 차안에서 캐롤을 최대 음량으로 무한반복하며

우리만의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고 다음날 아침까지 술을 마셨더랬다.

 

종교도 없고, 로맨티스트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며

1년에 몇 번 있는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걸 잘 못한다. (안한다가 더 맞을까)

오늘도 어제와 다른 새로운 날이고, 내일도 오늘과는 다른 특별한 날인데

이름이 붙여져 있는 몇몇 날들만 더 유난스럽게 기념하는 건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에 호구되는 것 같다는 핑계를 대며 더 철철히 외면하는거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이런 나 때문에 아이가 누려야할 순수한 동심히 파괴되는거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들 때가 있다.

더 특별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하루인데

잘 기억에 남지 않는 그저 그런 하루로 기억되는 건 아닌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거다.

왜냐면 일상속에서 특별함을 찾는 것에 감사함을 깨닫게 된 게 나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의 40년 가까이 살고 알게 된 걸, 4살 아이가 알 턱이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원래 안하려고 하던 크리스마스 트리도 뒤늦게 꾸몄다.

얼마 전 전참시에서 이시영이 아들을 목마 태워서 아들이 트리 제일 꼭대기에 별 장식을 다는 걸 보고

자기도 하고 싶다고 했었던게 뒤늦게 생각이 났다.

아들 키만한 자작나무 트리를 사서 장식을 하나씩 다는데 

아들이 별 장식 하나를 들고 안아달라고 했다.

텔레비젼에 나온 것 처럼 엄청 큰 트리도 아니고,

본인 키 만한 트리인데 그 장면이 무척이나 부러웠었나보다.

안아서 일어나니 별 장식을 제일 꼭대기에 걸고는 말한다. 

"나 이거 하고 싶었거든. 너무 신난다"  

 

한참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코로나로 집 밖에도 잘 못 나가게 하고

집에서는 층간소음 때문에 뛰지 말라는 소리만 입에 달고 있다.

무한대로 성장할 수 있는 아이의 세계를 작게만 만드는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평범한 일상이 더없이 소중하고,

특별한 날들도 평범한 하루와는 조금 다른 형태로 소중하다는 걸

아이가 알아줬으면 하는 내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오늘을 크리스마스가 아닌 그냥 12월 25일로 보내고 있지만,

내 아이는 산타할아버지를 만나는 크리스마스이자 행복한 12월 25일을 보내고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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