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_소설30] 돼지꿈_오정희 지음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작가 노희경님의 글에 푹 빠져,
그녀의 인터뷰들을 찾아보았다.
몇 년 전 인터뷰에서 한국 소설가 중 오정희 작가님을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걸 보았다.
그동안의 나의 독서가 얼마나 깊이 없음을 설명해주듯,
한국 문학에 큰 획을 그엇다고 평가받는 오정희 작가님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녀의 책들을 두루 빌렸다.
그 중 첫번째로 읽은 책이 "돼지꿈"이다.
5장 내외의 짧은 소설들을 묶은 책인데, 하나 같이 여운이 깊다.
소설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 이웃의 실제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실적인 이야기 전개에
결말을 쉽게 예측하기도 하고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에이, 그건 소설의 결말이잖아. 인생의 재현이 소설이지, 소설의 재현이 인생인 건 아니잖아. (중략)" (-p31쪽, 은점이 중)
짧은 이야기가 끝나면 머리 속에서 나이 들어감에 대해, 가족 관계에 대해, 부부 관계에, 부모님에 대해, 인생에 대해,
생각하느라 바빴다.
"하루하루는 똑같은 일상으로 흘러가는데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본 세월의 변화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p52쪽, 한낮의 산책 중)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에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마흔 즈음의 여자 주인공들이 느끼는 인생에 대한 허무감, 씁쓸함을 보며
요즘 내가 느끼던 불안과 우울의 원인이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겪는 통관의례 같은 것일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며 묘한 위안을 얻었다.
부모님이 돌아가면서 많이 아프시고, 육아와 회사 생활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하는 내게
같은팀 선배 차장님이 말씀하셨다.
"OO아, 니 나이가 딱 그럴 때야. 이제부터 시작이다. 부모님 아프신데 특별한 일이거나 너에게만 일어나는 나쁜 일이 아니야. 그러니 최악의 상황을 항상 생각하면서 아무 것도 아니다고 생각해"
나한테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냐고 괴로워하는 내 속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존경하는 인생 선배의 한 마디가 같은 상황을 보는 다른 눈을, 다른 마음을 가지게 해주었다.
부모님과의 이별을 이제 정말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머리로는 알겠어도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된다.
문득 부모님 없는 내 삶을 상상해보면 눈물부터 흐른다.
특히,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건, 지구에서 나를 생각해주는 유일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여자와 집은 가꾸고 위하기 달렸다는데, 애 낳고 기르는 게 다 에미 살 말리고 피 말리는 짓인줄 모르고 사내들은 그저 저만 위하라고 그러지. 잘난 인물이 따로 없더라. 여자란 그저 남편 위함 받고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거 바르면 젊어지고 예뻐지는 법이다. 윤서방, 마누라 위하긴 애저녁에 틀렸으니 부디 네 몸 네가 위해야 한다. (중략)" (-P184쪽, 보약 중)
아이를 낳고 아이 물건이나 옷을 사는 건 아끼지 않아도 내 꺼는 거의 사지 않는다.
그런 내게 엄마는 옷 한번 사입으라고 용돈을 쥐어 준다.
내 자식이 예뻐 눈에서 꿀 떨어지듯 바라보는 것처럼 나를 바라봐 주는 엄마.
작가님이 묘사한 딸을 생각하는 친정엄마의 잔소리와 보약을 읽으며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 오정희 작가님께
안녕하세요 작가님. 최근에 작가님을 알게 되고 작가님의 책, 네 권을 빌려 옆에 두고 있습니다.
소설 속 이야기들이 어디까지가 꾸며낸 이야기일까 생각될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에 깊이 빠져 책을 읽었습니다.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책을 펼치면 나만 이렇게 고민하고 사는게 아니구나, 위로를 받을 것 같습니다.
좋은 책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