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노트
[에세이] 회사에서 잘 나가던, 그렇지 못하던, 어차피 우리는 퇴사한다.
swmom
2023. 12. 13. 17:17
요즘 원씽 이라는 책을 읽으며 나의 "단 하나"가 무엇인지 계속 생각해보게 된다.
40년을 살아오면서 찾지 못한 "단 하나"를 책 한권 읽고 바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계속 관심을 두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집중하다보면 어느 순간 옆에 왔을 때 그냥 흘려보내지는 않을 거다.
요 며칠 이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며 나의 직장생활에 대해 글이 쓰고 싶어졌다.
대학 졸업 후 한 것이라고는 직장 생활 뿐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집중하다보니,
그래도 가장 꾸준히 한 생활이 직장생활 뿐이니 그 경험을 통해 사회생활을 하고있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조언을 해 줄수 있지 않을까.
나의 사회생활이 뛰어나서 '나처럼 하세요' 이런 글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2009년에 입사한 나는 직장 생활을 하며 소위 남들이 겪지 않는 위기를 여러번 겪었다.
돌아보면 내가 의도했던 일도 있었고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벌어진 상황들도 있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나는 회사에서 찍힌 사람 중 한명이었고, 잘 나가는 무리에서는 멀리 떨어진 한 사람이었다.
그런 평범한 직장인인 내가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젊은이들에게 또는 회사 생활이 힘들어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낼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의 경험을 통해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할 필요가 없는 이유를 적어보려고 한다.
제 1장. 잘 나가던, 그렇지 못하던, 어차피 우리는 퇴사한다.
처음 인사부의 연락을 받았던 건 입사 2년차 때였다.
회장 아들이던 사장님 여비서를 새로 뽑는데 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당시 현장 근무에 지쳐있었고 나같은 사람한테 그런 제안을 해주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다고 대답했었다.
(그 당시 난 뼛속까지 노예 마인드였던 것 같다,, 지금은 머 다른가)
몇 번의 면접인가를 보고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뽑혔다.
2년 후 이번엔 회장실 여비서 후보 면접을 보았다.
인사부장-인사부 상무-부사장까지 3번 이상 면접을 보고 회장실 비서가 되었다.
이렇게 여러번 면접을 보고 시간이 걸린데는 다 이유가 있다.
회장실에서 주로 하는 업무가 회장 패밀리 관련 업무인데,
사모가 보통이 아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면접을 보는 동안 주변 사람들은 다 내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같은 후보군에 있던 여동기는 친한 선배들에게 소문을 듣고 절대 하지 않겠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 난 그런 소문에 뒤쳐져있었고, 일은 어디나 힘든거라고 생각했었다.
대기업에서 회장실 비서는 아무나 못하는 경험이고
신입 직원이 대기업 CEO를 옆에서 모실 수 있는 기회를 감사하게 생각했었다.
이런 나의 생각이 읽혔는지 나는 비서로 뽑혔고 지옥같은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달 가량 OJT를 해주던 선임은 OJT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사모가 소리 지르고 욕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을 했고,
그 실체를 마주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곳 생활을 하며 언제 전화가 울릴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가만히 있을 때도 심장이 두근 거리기 시작했고,
소리 지르던 그녀 목소리가 귓 속에 계속 맴돌아
자려고 해도 깊게 잠을 자지 못했고, 잘 먹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살이 빠지고 체력이 떨어지며 기운이 없어졌다.
선임은 회장 FAM가 한 달에 한 두번씩 해외를 나가면 휴가를 보낼 수 있다고 했는데,
회장님은 그 때 마침 다리를 다쳐 휠체어 생활을 했고,
큰 딸은 임신 중이었고, 새 집을 짓느라 일이 많아 해외는 전혀 나가지 않았다.
이 생활을 하는 것이 나의 회사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보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건가라는 생각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내 자신은 없어지고 비서로서의 내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건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건지에 대한 물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당시 동료들은 1년만 버티면 남은 회사생활이 승승장구일거라며
무조건 버티라고 했다.
유일하게 가족만이 힘들면 그만 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세 달 정도 버틴 후 이런 생활을 견뎌낼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인사부에서는 눈에 띄게 살이 빠진 나의 건강이 염려되어
사내 의료원에서 온갖 검사를 하게 했고,
자율신경이 망가졌던 나는 우울증이라는 프레임을 달고 그 자리를 나올 수 있었다.
(실은 나의 건강이 아니라 내가 정말 아파서 회사에 무슨 불이익이 올까 두려워했던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비서실을 나오며 나는 최대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나의 회사생활에 마지막 부서가 될 만한 곳을 찾았다.
인사부에서는 젊은 직원이 많고 활발한 사람들이 많은 영업부를 추천했었는데
그 당시 나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노무부였다.
급여 일을 담당했는데 회사에 들어오고 그동안 해왔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이고
숫자 관련 일이 나름 내 적성에도 잘 맞고 재미있었다.
회사 일에 더 욕심내지 않으려고 했었던 초기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주도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고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그 다음해 나는 과장 진급 대상 연한이 되었다.
당시 노무부에는 세 팀이 있었는데, 가장 힘이 좋은 노사관련팀, 그 다음이 근로기준을 담당하는 팀,
마지막이 내가 있는 복지후생 관련 팀이었다. 그리고 각 팀에 과장 진급 대상이 1명씩 있었다.
근로기준을 담당하는 팀의 대상자는 경력입사한 변호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될거라 모두 생각했다.
문제는 나와 협력팀에 있는 동기오빠였다.
평소 같으면 서로 다른 팀이기 때문에 전체 평가에서 순위권에 든다면 진급이 되는 것이었지만,
그 해는 전사적으로 새로 생긴 직원들의 의견을 접수하는 곳을 통해
항상 인력본부 내에서만 진급이 된다고 불만이 넘쳐나던 때이다.
그래서 인력 본부 내 진급자를 제한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우리 회사는 대리,과장 진급 대상자들은 회사 관련 시험을 치른다.
성적 공개는 없지만 그 시험은 늘 진급 누락자들에게 항상 좋은 핑계거리로 작용했다.
시험을 좀 잘 보지 그랬냐 라며.
시험을 앞두고 팀장은 10등 안에만 들라고 했다.
지금껏 우리 회사는 10등 안에 드는 사람은 진급을 시켰다고.
그가 그렇게 말했던 또 다른 이유는 내가 가진 다른 자격 점수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진급 시 평가 하는 자격 조건을 거의 다 갖추고 있어 최고점이었기 때문에
시험만 잘 보면 된다고 생각했으리라.
열심히 준비한 시험이 끝나고 얼마뒤 있었던 회식 자리에서
부서 상무님이 내게 X대리는 일은 안하나 라고 한마디 하셨다.
갑자기 무슨 소린지 몰라 당황하자 시험을 왜케 잘봤냐고 말씀하셨다.
그 후 동기 오빠가 있는 팀의 부장님을 통해 한손가락 안에 들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동기오빠는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그런데 그 해 진급 발표에서 대리로 남은 사람은 나였다.
인사부와 늘 함께 술 마시며 협력을 다지는 협력팀을 이길 수 없었다.
나에게 10등안에 들면 걱정없다고 큰 소리 치던 팀장은 진급 발표날 집에 가라며 사과를 했었다.
그런데 그 후 동료들은 나에게 너 비서실 가자마자 나온다고 해서 진급이 안되는거 아니냐며
소위 한번 찍혔기 때문에 앞으로도 힘들거 아니냐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시험도 잘 보고 자격 점수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상위권인데 진급이 되지 않았다는 건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
타 부서에서 평소 일도 잘 하지 않고 자격 하나 없이도 진급 대상자가 없는 부서에 속해있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상사에게 잘한다는 이유로 진급이 되는데
열심히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자격을 따고 회사가 우선이 되어 일을 했던 내가 바보 같고
앞으로 어떻게 회사 생활을 해야할지 막막했었다.
그 당시의 나에겐 다른 누구의 조언도 위로로 들리지 않았다.
스트레이트로 진급하며 회사에서 인정받은 선배들이 많았는데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실망감.
주위의 우려처럼 내년에도 나는 같은 조건일텐데 또 안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
나처럼 회사에 올인하며 회사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없는데,
그런 것도 못 알아보다니 하는 원망과 서운함.
동기는 내게 미안해했지만 사실 그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일할 의욕을 잃은 채 힘든 1년을 보내었고, 그 다음해 진급이 되고 그 부서를 탈출했다.
그렇게 8년이 흐른 지금,
나는 차장이고 그 때 동기는 과장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더 진급이 잘 되었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동기는 과장이지만, 코로나 기간 부동산을 늘려 부동산 부자가 되었고,
부동산 관련 사업을 하며 회사에는 월급 받으며 놀러 나온다고 한다.
한번에 진급하여 승승장구 하던 사람 중 다른 회사로 이직하거나 자기 사업을 위해 그만둔 이들도 많다.
정답은 없는 인생이다.
누가 더 잘했고 못했고 평가 받는 인생이 아니다.
당장 과장이 된 사람이 승리자처럼 느껴지고 진급이 안된 나는 패배자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지나보면 다 같은 자리에서 만나게 된다.
입사했을 때 우리는 모두 열정 넘치는 신입사원으로
이 회사에서 모두 한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열정으로 불타던 사람들이었지만,
결국 우리는 어차피 다 퇴사자로 만나게 된다.
당장 주변 동료가 더 잘 나가는 것 같아 질투하고 시기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다 만난다. 회사 안에서 같은 직급으로 만나지 않더라도
사회에 나가면 우리는 김대리, 박과장이 아니라 김 xx, 박xx이란 이름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괜한 질투심으로 동료를 잃을 필요가 없다.
평생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다.
직장을 나가고 나면 회사 안에서 분류되던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따위의 직책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회사 안에서 아무리 잘 나가는 임원이든 보직자든 사회 밖에서 우리는 그저 아줌마, 아저씨, xx 엄마, xx 아빠, xx씨일 뿐.
결국 같은 사람인 것이다.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는.
그렇기 때문에 당장 괴로운 회사생활을 참고 견디며 아둥바둥할 필요가 없다.
회사는 우리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
오지 않을 미래를 위해서,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임원을 꿈꾸며 회사 생활에 올인을 할 필요도 없으며,
자신의 실수 때문에 회사에 찍혀서 앞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회사가 나를 찍으면 나도 회사를 찍으면 된다.
찍힌다는 표현 웃기지 않은가.
평생 있지도 않을 회사에서 찍힌다고 겁나나?
내가 너를 찍었어라는 생각으로 일하라.
나를 알아봐주지 않고 진정한 가치를 몰라주는 회사라면
나도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겠다는 마인드로 적당히 회사생활을 하면 되는 것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