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책리뷰_소설7] 퀴즈쇼_김영하 지음

swmom 2021. 1. 24. 11:50

 

 

 

 

최근에 소설, 영화, 드라마에 푹 빠졌다.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간접경험을 하기도 하고 대리만족을 하기도 하고 현실을 잠깐 떠나서 새로운 세상으로 여행하기도 하고

그런 기분이 들어서

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까 궁금한 마음으로 '다음' 작품을 찾곤 한다.

 

김영하 작가님은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그 분의 책들은 제목은 낯설지 않았는데 내용이 잘 기억이 안났다.

그래서 그 중에 제일 두꺼운 책으로 골라봤다.

평소 어떤 주제이든 몰입해서 듣도록 이야기를 풀어내시는 모습에서

장편소설을 어떻게 이끌어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바로 "퀴즈쇼" (김영하 지금/문학동네 제작) 이다.

 

 

이 책은 꽤 두껍지만, 읽다보면 어느새 100쪽 200쪽 300쪽 책장이 넘어가고 있다.

그만큼 재미있다는 이야기다.

금방 읽힌다는 걸 재미있다는 말로 줄여 표현해서 그렇지

주인공의 처지를 생각하며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심장이 쫄깃해지기도 하고, 먼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런 모든 감정들의 파도에 타다보면 어느새 소설이 끝나있다.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이십대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아름다운 자들이

가장 불행하다는 역설. 그들은 비극을 살면서도 희극인 줄 알고 희극을 연기하

면서도 비극이라고 믿는다. 이십대 혹은 이십대적 삶에 대한 내 연민이 이 소설

을 시작하게 된 최초의 동기라면 동기였다. 지금 이십대 젊은이들에게 '너의들

은 외롭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김영하_책 표지 뒷면)

 

 

언젠가 대학 은사님이 20대 초반인 나를 보고 "어른의 미소(?)" 같은 얼굴을 하시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이십대는 젊고 열정이 넘치지만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불안하고 불안정하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시간이 많이 흘러 정확한 말씀이 기억나지만 않지만 이런 뉘앙스였다.

젊고 혈기 왕성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넘치는 내 모습을 보고 

'나도 그 때는 그랬었단다 그렇지만 지금이 더 좋아' 라고 말하는 듯한 은사님이

그때의 나는 전혀 이해가 안되었다. 서른 후반이 되어서야 그 말 뜻이 공감이 된다.

이해가 된다.

 

작가님이 말한 것처럼 '가장 아름다운 자들이 가장 불행하다는 역설'

마치 청춘이라는 큰 선물을 가졌기 때문에 다른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며 이십대, 젊다는 것, 청춘이라는 것, 그리고 나이듦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물질적 가난과 정신적 결핍, 심리적 불안감,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단순히 박학다식한 수준이 아니라 깊이 있는 통찰력이 작가님의 매력임을 보여주는

구절들이 너무 많았다. 그 구절들을 다시 읽고 다시 읽으며 이십대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해 인생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외할머니(최여사)가 유일한 가족인 대학원생 이민수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그녀가 남긴 빚으로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고시원 생활을 하게 된다.

인터넷 채팅방에서 퀴즈를 풀며 알게 된 '벽속의 요정'(서지원)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TV 퀴즈쇼에 출연한다. 

퀴즈쇼 작가였던 서지원과 만나게 되었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는 민수는 데이트비용, 고시원 월세를 늘 고민한다.

그러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원 옆방녀에게 20만원을 빌렸는데 어느날 그녀가 자살을 한다.      

그리고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해 고시원에서도 쫓겨난다.

그는 퀴즈쇼 출연날 자신에게 명함을 주었던 이춘성이라는 사람에게 연락한다.

'회사'라는 곳에 들어가서 퀴즈를 풀면 계약금 천만원도 주고 상금도 준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괴짜같은 사람들과 지내다 빠져나오게 되는 줄거리다.

 

돈이 없는 현실 앞에 현실은 더 냉정했다.

외할머니가 젊을 때 계약한 복리 20프로로 빌린 이천만원이 3억이 넘는 돈이 되어 있어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 하고,

알바생의 일거수 일투족을 이른 새벽에도 CCTV로 지켜보고 있는 편의점 점주,

월세 납입일을 하루도 용납치 않는 고시원 주인 등

그들이 그렇게 된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도록 한 경험이 쌓인 결과에서였겠지

 

하루아침에 그런 상황에 놓인 민수가 불쌍하게만 보이지 않은 건,

아주 적극적(?)으로 그 상황을 타계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 같은 모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첫 취업 면접에서 마주한 사생아인 자신을 대하는 면접관들의 태도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현실에서 지쳐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고 그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민수가 고시원에서 쫓겨나 캐리어를 끌고 '흰개미굴'같은 신촌 찜질방에 간다.

지방에서 올라와 캐리어를 끌고 기숙사로, 원룸으로 가기 위해 신촌을 캐리어를 끌며 다닌 내 이십대가 떠오른다.

그 땐 그게 참 싫었다.

 

신입생 OT에서 남자 선배들은 갓 들어온 여자 후배들의 호구조사(?)를 했었다.

"집이 어디야" (생각해보면 이렇게 물은 선배들은 고수가 아니다.

진짜 고수들은 어느 고등학교 출신인지 물으며 지연 학연을 동시에 챙겼었다.)

외삼촌댁에서 잠시 머물던 나는 "강남역"이요 라고 대답했었다.

생각해보면 이 대답이야말로 지방에서 온 티를 팍팍 내는 거였는데,

별 의심없이 이따 같이 가면 되겠다 했었다.

그들과 같이 집에 가는 끔찍한 경험은 하지 않았지만

학교 생활을 하며 내가 지방에서 왔고 강남역은 친척집이었단 걸 알았던 그들에게 난 투명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강남출신, 잘사는 부모를 둔 애들이 그들만의 무리의 새내기가 되어있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정말 몇몇이었다.

그렇지 않은 좋은 선배들이 훨씬 많았음에도 그들이 아주 가끔 생각이 난다.

내가 서울 와서 처음 겪은 차별이라서 그런 걸까.

 

 

20대 초반의 모든 기억이 있는 신촌에서 헤매는 민수를 보며

저 기억이 떠올랐다.

  

 

 

"기회는 신선한 음식 같은 거야. 냉장고에 넣어두면 맛이 떨어져. 젊은이에게 제일 나쁜 건

아예 판단을 내리지 않는 거야. 차라리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게 더 나아. 잘못된 판단을

내릴까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거, 이게 제일 나빠." (-page 64쪽 중)

 

"연정(戀情)을 완성하는 것은 비밀이다. 연정과 비밀은 된장과 미생물의 관계와 같다.

비밀이라는 균은 연정을 발효시킨다. 비밀이 발효시킨 연정은 서서히 냄새를 풍기며 익어간다.

아슬아슬하다. 비밀이 너무 과하면 연정은 부패되고 그리하여 끝내 악취를 풍긴다.

그때쯤 되면 모두가 그것을 향해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그러나 적당하기만 하다면

연애는 신비롭고 짜릿하게 만들어준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결혼은 연애의 결말이라기보다

전혀 다른 어떤 것일 가능성이 크다. 결혼은 연애에서 비밀이라는 위험요소를 제거한

무균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page 98~99쪽 중)

 

"그리고 우리의 진심 어린 말도 곧잘 오해를 받는다. 내 입에서 나간 '사랑'은 네가 들은 그

'사랑'이 아니다. 나의 생각은 너에게 전해지지 않고 너의 생각 역시 나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말은 언제나 왜곡되고 변질된다. 그러나 돈에 대한 말은 아무 손실 없이 그대로 전달된다"

(-page 107~108쪽 중)

 

"기억할 것 - 관점만 바꿔도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즉, 다른 세상을 보고 싶다면 관점을

바꿔야 한다." (-page 117쪽 중)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날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만약 그런 날이라면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담아두고 싶어서요." (-page 189쪽 중)

 

"가난한 사람은 이렇게 해서 좀더 가난해진다. 그들은 가난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결국 더

가난해진다. 가난을 숨기기 위해 '남들 다 하는 것'을 하고 그 '남들 다 하는 것' 때문에 빚을

지고 그 빚을 갚느라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다." (-page 195쪽 중)

 

"이 생이 전부라면 너무 억울하기 때문이다" (-page 200쪽 중)

 

"여자라는 존재는 방으로 가득한 저택 같은 거예요. 거기에는 사람들이 오가는 복도가 있고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도 있고 가족들이 함께하는 거실도 있지요. 그러나 그것들 너머에는

전혀 다른 방들이 있답니다. 누구도 문고리조차 잡아보지 않은, 아예 그런 방이 있는지조자

모르고, 안다 해도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방들, 그리고 그 방들 중에서도 가장 깊은

방, 신성하고 신성한 그곳에 영혼이 홀로 앉아 끝내 오지 않을 어떤 발자국을 기다리는 것,

그게 바로 여자의 본성이에요" (-page 219~220쪽 중/'순수의 시대' - 이디스 워튼 인용)

 

"그런데 이런 지극한 행복의 순간에도 인간의 상상력은 어느새 최악의 파국에 가 닿는다.

내게 찾아온 이 행복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에서부터 혹시 이 모든 것이

누군가가 꾸민,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려 가장 극심한 고통을 맛보게 하려는 사악한 계략이라

생각하는 편집증까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비록 그 싹은 아직 크지 않을지라도, 마음속

깊숙한 어딘가에서 천천히 자라나고 있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누군가로부터 깊이 사랑받지

못한 자의 숙명적인 어리석음일 수도 있었다.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 역시 의심스러웠다."

(-page 252~253쪽 중)

 

"지원 -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는 거야."

 민수 - "이 모든게 너무 꿈 같아서 잘 믿어지지가 않았던 거야" " (-page 318쪽 중)

 

 

 

- 김영하 작가님께

작가님 꼭 한번 만나뵙고 싶습니다.

얼마전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에 연희동에서 술을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점을 하고 있는 청년이

작가님이 서점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후광이 비춰 멍해졌었다고 했는데요

아마도 저도 그럴 것 같습니다.

넓으면서도 깊이있는 작가님의 생각과 글과 책에 무한한 존경을 표하는 바입니다.

멋진 책 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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