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노트

[에세이] 다시 피아노 배우기 - ep1. 손가락이 기억하는

swmom 2021. 2. 9. 15:53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웠었다.

남자애들은 태권도, 여자애들은 피아노, 필수 코스처럼 다 배웠었던 것 같다.

매일매일 놀이터 가듯 피아노학원에 가서 친구들이랑 놀고 연습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연주회하던 날, 드레스 입고 화장하고 했던 그 날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전국 피아노 대회에 나갔다가 생각보다 못한 상을 받고 와서 속상해했던 기억도 선명하다.

 

내 방에 있던 피아노는 대학생이 되고 1년에 한 두 번도 집에 가지 않자

엄마가 팔았다. 그때부터 피아노 연주는 아예 할 일이 없었다.

20년 넘는 시간이 흐르고, 얼마 전에 우연히 악보를 봤는데...

하얀 건 종이고 까만건 음표인 것만 알겠지... 어떤 음인지 읽을 수 없게 되어

먼가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악보를 보면 어떤 음인지는 알 줄 알았는데, 그렇게까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건가

 

그때 우린 피아노를 어디까지 배웠는지를 체르니 몇 번까지 쳤다고 표현했었던 것 같다.

난 40번까지 배우고 피아노 학원을 그만 다니게 됐다.

바이엘 상,하, 하농, 소나타, 체르니 100번, 30번, 40번, 이런 책들을 보고 연습했었다.

 

 

집에 있을 때 KBS 클래식 채널 라디오를 자주 듣는데,

특히 피아노 연주가 참 좋았다.

손열음, 조성진 피아니스트 연주를 유튜브로 자주 찾아본다.

그러던 중 다시 피아노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가 된 음악이 있었으니,

얼마 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다시 봤는데 OST가 너무 좋은 거다.

지브리 OST 모음을 다시 찾아들으면서,

OST 한 곡만이라도 제대로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주변 피아노 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20분 수업에 3만원, 1시간 연습 가능, 10회씩 등록이 가능하다고 했다.

요즘도 학생들은 바이엘, 체르니 책으로 배운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배웠을 때의 책과 다르게 표지나 악보가 캐릭터들도 그려져 있고 참 예뻤다.

내가 배우고 싶은 곡 악보를 사가서 그것만 배울까 생각하다가

몇 달 꾸준히 배우고 싶어서 선생님께서 추천하시는 대로 기초부터 다시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땐 매일 학원을 가고 월 등록을 했던 것 같은데

요즘 학생들은 보통 일주일에 1번, 많아야 2번 온다고 했다.

학원 시스템도 많이 바꼈구나.. 세월이 갔음을 느꼈다 ㅎㅎ

 

시간이 있을 때 배울 수 있을 때 배우고 싶어 바로 등록을 하고

오늘 첫 수업을 했다.

어찌나 설레는지, 건반 위 손가락들이 떨렸다.

 

하나도 기억 못할 줄 알았는데,

손가락들이 정말 움직였다. ㅎㅎ

평소 내가 즐겨 듣던 곡이나 아는 곡들로 연습하니 더 재미있기도 했다.

피아노 소리를 듣는데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다른 생각은 안들고 집중할 수 있었다.

내게 필요한 시간...

 

어렸을 때는 재미있는줄 모르고

다니라고 하니까 다녔었던 학원이었는데,

내 발로 다시 찾아가서 피아노를 배우게 될 줄이야.

내가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었던 이유가 

악보를 읽고 연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내 모습을 추억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그 때의 나를 만나고 와서 이렇게 뭉클한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내 집을 사면,

다시 피아노를 사고 싶다.

 

그리고 '언제나 몇번이라도'를 멋지게 연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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