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노트

[에세이] 오랜만에 단발머리

swmom 2021. 2. 16. 10:37

코로나가 터지고 회사에 나가지 않게 되며

한달에 한번 하던 뿌리 염색을 멈췄다.

자연스레 미용실을 가지 않게 되었다.

한 동네에 오래 살며 단골이 된 미용실이었는데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컬러나 컷트를 해주는 덕분에

편하게 자주 이용했었다.

 

새로운 동네의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만,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그런 거였다.

익숙하게 이용하던 장소를 새롭게 찾아야 한다는 것...

 

말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나를 보며 내 취향이나 스타일을 때로는 나보다 더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

알고 지낸 시간만큼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믿고 맡기는 것.

단골이라는 가게의 매력이 마치 사람과 사람의 관계의 축소판 같다.

단순히 어떤 장소에 발길을 끊은 게 아니라

그 관계를 끊어내는 것 같은 기분에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온 후 묘한 상실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한 번 정착한 곳을 나이가 늘면 들수록 떠나기 힘들다고 하나보다.

문득 나의 노후는 어디서 보내고 있을지.... 궁금해지네..

 

 

어느새 허리까지 긴 머리는

감고 말리기도 귀찮고, 많이 빠진 머리카락을 청소하는 것도 귀찮다고 여겨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막상 헤어스타일을 바꿀려고 보면

지금 머리도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마음이 들어

미용실 가는걸 여러번 심사숙고 했었는데,

어제는 그냥 싹뚝 짧게 자르고 싶어졌다.

미 美를 위해서가 아니라 귀찮음에서 오는 결정이어서 그랬던 걸까.

 

집 주변이 번화가라 선택지가 너무 많아 고르는게 어려울 정도로 미용실은 정말 많았다.

왜 그런 결정을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눈에 들어오는 한 곳에 지금 바로 가도 되는지 물어보고 된다고 해서 방문했다.

머리까지 오는 머리를 어깨 뒤로 자르려고 하니,

예전 미용실 실장님이 그랬던 것처럼, 반대 의견을 표현하셨다.

그래도 강력히 원하는 나의 의견을 반영하여,

세련되면서도 관리하기 어렵지 않은 커트법을 설명해주시고 잘라주셨다.

 

아마 단골 미용실에 갔었다면,

실장님의 의견을 따라 난 어깨 밑으로 내려오는 중단발을 선택했겠지.

실제로 여러번 그러기도 했다.

새로운 곳을 찾은 덕분에 나도 모험을 할 수 있었다고 할까.

 

한번에 싹둑 자르고 점점 다듬어 가는데,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혹시 가져 갈거냐고 물어보시는 질문이 농담인지 아닌지 판단되지 않을 정도였다.

간혹 가지고 가시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어차피 기를려고 하면 또 기를 수 있는 머리이고,

일부러 정성들여 길르고 잘 관리했던 게 아니어서 그런지

나는 그런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

 

컷트하고 스타일을 잡기 전인데도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참 좋았다.

마치 머리카락 끝에 근심 고민 가득 실어 같이 잘라낸 기분처럼

속시원했다고 할까.

 

머리스타일 하나 바꿨을 뿐인데

어제 하루 기분도 참 좋았다.

리프레쉬란 단어를 온 몸으로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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