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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예기치 못한 일들에 대하여

swmom 2021. 3. 24. 15:32

 

택배가 왔다.

당일 신선 배송, 꽃이라 배송에 주의해달라는 표시가 있었다.

보내는 사람에 가게 이름이 적혀있어 누가 보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지난주 생일이었던 탓에, 누가 서프라이즈 선물을 보내었나

3초간 살짝 설렜다.

나에게 이런 깜짝 선물을 보낼 사람이 없자나... 그럼 누구지?

편지도, 카드도, 미리 전해받은 메시지도 없었기에

꽃가게에서 홍보 이벤트로 보냈나보다 하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집주소를 어떻게 알아서?

머야 정말,,,,,

별것 아닌 일에 혼자서 정말 온갖 상상을 해가며

꽃병을 꺼내와 물을 받아 꽂아 두었다.

테이블이 환해지고 집 안에서도 봄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잠시 뒤 올케가 카톡이 왔다.

나보다 생일이 이틀 빠른 올케에게 꽃선물이 여러개 와서 하나를 우리 집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지난주에 얼핏 그런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카톡으로 생일인 친구에게 케익이나 커피 쿠폰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꽃이나 과일, 다양한 물건을 선물로 보내고

받는 사람은 주소만 입력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도 간간히 이용하긴 했지만, 그 종류가 정말 다양해져서 놀라며 대화했었다.

 

예상치 못한 꽃을 선물 받고는 올케가 보낸 걸 알고 고마운 마음에 기쁘고,

누군지 모를 때는 누굴지 상상하며 기뻐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일로 기쁜 날도 있는데,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며칠 전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줄 때 있었던 일이다.

옆 단지 아파트의 가정어린이집이다보니 차로 아이를 데려다주고 온다.

차를 주차하는데 내 차 바로 앞에 이중주차로 한 아주머니가 주차를 했다.

난 바로 나가야 하니까 혹시 집에 들어가시는거면 바로 차를 뺀다고 말을 하려는데

애를 챙기는 찰라 아주머니가 뛰어서 엘리베이터 앞쪽으로 가는거다.

집에 들어갔다 나오면 귀찮으니까 내 나름은 배려한다고

혹시 바로 나가시나요? 라고 손을 흔들며 물었는데 쳐다보고는 쌩까고 엘리베이터를 타셨다.

못들었나보다 하고 우선 애를 어린이집 보내고 차를 움직여보고 안되면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린이집에 갔다가 나오는데 옆통로로 들어갔던 아줌마가 우리 통로 앞에서 차로 걸어가는거다.

잠깐 볼일을 보러 온건지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까

차 앞에서 혹시 지금 나가시나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침부터 왜 안달하고 난리냐 차에 온거면 지금 나가는거지" 하면서 마스크도 안쓴 얼굴로 째려보는거다.

순간 너무 당황했다. 최대한 정중하게 물은 내 입장에서는 머가 그렇게 기분이 나쁜지 순간 파악하려고 했다.

"나가시는지 질문을 드린건데 왜 화를 내세요?"라고 물었다.

"차 뺄려고 왔자나 왜 안달해 여기 사는 주민도 아니면서"라고는 차를 출발시켜 가버렸다.

.....???

 

차를 얼른 빼야하는데

차에 타서 한동안 멍했다.

그 아파트 주민이 아니면 주차하면 안되나?

언제 봤다고 반말이지?

 

서비스업에 오래 종사하며 질문을 할 때 최대한 공손하게 하기 위해

혹시... 로 질문을 시작하고, 물음표로 끝나는 문장의 끝 어투도 최대한 낮춰말하는게 습관이 된 내 말투가

그렇게 안달나게 느껴지는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아침부터 잔뜩 날이 서 있는 아줌마를 잘못 건드렸구나,

그냥 이중주차하고 애를 보내고 나올걸 머하러 차를 주차선 안에 제대로 대었을까

나에 대한 책망을 하기도 했다.

이제 내가 출근하면 엄마가 애를 데리고 와야 하는데 착한 엄마가 저런 아줌마한테 당하면 어떡하지 걱정도 되었다.

 

별일 아닌 일이니까 그냥 잊자라고 생각했지만,

하루종일 성형한 특유의 얼굴을 한 그 아줌마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 아줌마는 성질을 다 내고 갔지만

그 성질을 받아내기만 한 나는 왜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지 짜증이 났다.

집에 우환이 있는 정신나간 여자한테 당했구나 불쌍한 여자를 위해 기도해주자라고까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 아줌마의 그 모습이 잊히질 않는 내 성격이 참 싫다.

 

그 일이 있었던 날은 웃어도 시원하게 못 웃고,

먼가 기운이 없었다.

예상 못한 일로 기분이 바닥을 찍은 것이다.

코로나로 회사도 안나가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며

이런 갈등을 겪을 일이 한동안 없어서 더 그랬던 걸까.

지난 1년, 외부 소음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더 귀기울일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다시 조금씩 일상생활로 복귀하면서 경험한 이 사소하고도 기억할 필요도 없는 작은 '사건'으로

일상으로의 복귀가 반갑지 않게까지 느껴지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동물, 인간이기에

내 맘과 다르게 상황을 보고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인간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게 인생이거늘.

나이는 먹어도 여전히 난 이런 갈등을 대하는 것에 서툴기만 하다.

 

다만 한가지 바라는 건,

저렇게 늙지 말자. 저런 사람은 되지말자.

다짐하며 내가 할 수 있는,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 갈등을 줄이고 마음의 평안을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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