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 연휴는 5일이다.
주말 포함 연휴가 길다보니 여유있게 고향을 찾게 되었다. 새벽 근무 후 KTX를 타고 내려가는 중이라 잠깐의 잠을 잤다. 넷플릭스도 유튜브도 재미가 없어 가방에 있던 데미안을 펼쳤다.
데미안의 시작이 이렇듯 심오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처음 읽는 것 처럼 낯설다.
10살이 되던 해의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두번째 장을 읽다, 문득 시골 할머니댁에서의 내나이 10살 즈음이 떠올랐다.
우리 할머니 댁은 그 마을의 정 가운데 정도 위치해있다. 동서남북을 통틀어.
마루에 앉으면 마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곳에 앉아 마을을 바라보며,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즈음 가마솥에서 소죽을 쑤던 냄새가 가득한 시간이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꼈던 순간이다.
그 냄새가 그립다.
할머니할아버지가 다 돌아가시고는 고향을 가도 할머니댁까지는 잘 가지 않는다.
성인이 되고 할머니댁을 갔을 때 어려서 크게만 느껴졌던 할머니댁 마당이 좁게만 느껴져 이상한 이질감을 느꼈다. 한여름에는 대야에 얼음물처럼 차가운 물을 받아 동생과 수영을 했고, 겨울에는 마당 전체에 비닐을 깔고 배추를 절여 김장을 하는 엄마와 고모, 숙모들 뒤에서 김치 한줄 달라고 눈을 떼지 못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환갑에 마을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하던 날은 또 어떠한가. 마루에 커다란 상을 화려하게 차리고 그 앞에 앉은 할머니 할아버지 뒤로 촌스러운 한복을 맞춰입은 며느리들이 서서 찍은 사진은 할머니댁 안방에 자랑처럼 걸려있었다. 마당이며, 방마다 손님들이 가득하고 꽹과리, 장구치며 흥이 올라 덩실덩실하던 사람들이 가득했던 그 시절의 할머니댁은 운동장처럼 넓었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의 반도 안되는 것 같은 마당을 마주했을 때의 이상한 기분이란,,,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자주 찾았던 할머니댁은 나의 놀이터였다. 할머니를 따라 뒷 밭에 가서 상추를 뽑고 고추를 따기도 했고, 산에서 흐르던 개울터에서 빨래하는 할머니 옆에서 물놀이를 하기도 했다. 할머니 댁 앞에 있던 우물에서 물을 떠올리기도 했었다. 30년도 안되는 사이... 그런 기억이 옛날 옛적에 하는 추억으로 떠올리듯 세상이 변했다. 그리고 그런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명절에 내려갈 고향이 있다는 것에,
명절마다 친지들이 다 모여 제사를 지내고 함께 하던 기억이 참 감사하다.
그립기도 하다.
소죽 쑤는 냄새가 특히나 그립다.
이제는 아련한 할머니 모습도,,
그립다.